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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보지마시오)73

pd수첩 캄보디아 우물편 단상 1.그냥저냥 일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이다.시스템, SNS의 발달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모든 것들을 지워버렸다.사회발전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다. 옳다.언론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고, 앞으로 우물로 장난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2.하지만.하지만 물은 생명이다. 이 대전제는 무조건 옳다.방송이 나가기 전에도 나간 후에도 캄보디아를 비롯한 저개발 국가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씻고 마실 물이 필요하다.그 물을 찾기 위해 아이들이 학교도 가지 못하고 하루 5km 이상을 걸어 물을 긷거나,웅덩이에 아무렇게나 고인 물을 먹고 수인성질병으로 죽어가는 것도 여전히 사실이다.누군가 우물로 장난친다고 해서 그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너무 똑똑해진 우리가 돈을 쥐고 있는 지금부터,그들은 더 힘들지도 모른다... 2016. 2. 18.
20151216 ‘정환아, 엄마가 영어를 몰라. 엄마가 영어를 읽을 줄 몰라. 아들 미안.' 예상치 못한 포인트. 웃음이 터져야 할 곳에서 왈칵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가족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은 이야기. 그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가 슬프고 또 아팠다. 그래도 괜찮으니까. 그래도 괜찮으니까. 그러지 말아야 하는게, 자신을 감추고 능동적이고 긍정적 인간으로 포장하는게, 가슴 속 깊은 말을 접어두고 한번더 참을 줄 아는 게, 그런걸 ‘지혜’라 말하는 시대를 살아가는게, 난 참 어렵다. 처음부터 난 부적응자였나보다. 2015. 12. 16.
20151208 옳은 소리인지 알수없으나 난 재능은 타고 난거라 믿는다. 어릴적 공부는 열심히 하나 단 한번도 상위권에 서지 못하는 친구를 목도한 적이 있다면 내 말을 이해할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열심히 하는 자와 타고난 자의 차이는 하면된다, 믿는자에겐 능치못함이 없다 정도의 자기주문으로 상쇄될 수준의 것이 아니다. 안타까운 건 이 차이를 하면된다의 주문에 빠진 이들만 모른다는게다. 글을 잘 쓰고 싶다. 한때 꽤 쓴다고 착각한 적도 있었으나, 대가까지 갈 것도 없이 페북에 돌고도는 수많은 벗들의 글사위에도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요즘이다. 잘쓰고싶다. 잘쓰고싶다. 잘쓰고싶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읽은 책 중에 글쓰기에 관한 책이 꽤 된다. 물론 내용이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지만 공통적으로 꾸준히 써라. 매일써라 정도만 .. 2015. 12. 10.
어느정도 사적인 공간 대학원 조교시절, 난 학과사무실에 혼자 앉아있는게 그렇게 좋았다.분명히 공적인 공간이지만 내 책상과, 찾아오는 이를 맞을 쇼파와 테이블이 전부인 공간.어느정도 공적이어서 함부로 행동거지를 하기도 애매하지만,또 어느정도 사적이어서 내가 열쇠를 함부로 열고 잠글 수 있는 공간. 그러라고 있는 공간은 아지었다지만,모두가 돌아간 6시 이후 스탠드 하나 밝히고 있을때 집중되는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았다. 혁신센터 사무실도 그랬다.누구도 찾지 않는 주말 오후,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앉아 쓰는 보고서만큼 빨리 써지고 잘써지는 글도 없었다. 남들과 같은 사무실에 들어앉게 되고,고개만 돌리면 내 모니터가 들통나는 사무실에 있게되며그런 소소한 재미들은 사라져버렸다.모두가 쓰는 사무실,철저하게 공적인 .. 2015. 6. 21.
F2F 캠페이너 1.얼마전 리비아 난민선이 가라앉으며 나간 멘탈이 회복되기도 전에,네팔에서 사람이 죽었다. 심지어 하루에 천명씩 사망자가 늘어간다.자연이 한 일이라지만, 마음이 아프다. 2.그러거나 말거나(황금연휴거나 말거나),각종 페어에 F2F캠페이너로 빠지지 않고 참여중이다.사실 관심없는 이들에게 끊임없이해외아동결연을 말하고 외치고 이야기한다.하긴 관심없는게 그들 뿐인가.오늘 몇건이 등록되었는지에 혈안이 된 나도,오늘 봉사시간이 얼마나 되는지(혹은 내가 얼마나 보람있었는지가)가 중요한 이들도 실은 정작 중요한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3.장그래가 처음 받은 미션이 아마 볼펜을 팔아오라는 것이었을게다.세상에 처음 던져진 그가 세상에서 처음받은 미션은 어디든 굴러다니고,신경만 조금 쓰면 당장이라도 주워올 수 있는 볼펜을.. 2015. 5. 1.
150403 계명대 청춘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그래서 교수가 되야지 생각했다.조교로 직원으로 지근거리에서 교수님들을 뵈면서,교수는 연구하는 직업이지 가르치는 직업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방향은 틀어졌고 난 현장으로 나왔다.치열한 사회복지 현장에서,삶이란 함께가는 거다.그러니까 우리 같이 이렇게 살자란 말을 하고 싶었다. 지난주 120명의 청춘들을 복지관 강당에 모아놓고 "꿈"에 관한 꼰대질을 시전하였다.그리고 오늘 계명대에서 삶과 그 삶을 함께 살아내는 방법에 대해 떠들어댔다.다음주는 대가대, 대구대, 영남대를 돌며 같은 이야기를 나대며,'너희도 나처럼 살자'고 말할 예정이다. 잘하고 있을까.란 질문이 떠나지 않은 이번주의 끝자락에서,문득 젊은 친구들과 꿈꾸고 싶다.라며 개꿈을 펼치던 나의 젊은 날이 떠올랐다... 2015.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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