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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보지마시오)

어느정도 사적인 공간

by 짱고아빠 2015.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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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조교시절, 난 학과사무실에 혼자 앉아있는게 그렇게 좋았다.

분명히 공적인 공간이지만 내 책상과, 찾아오는 이를 맞을 쇼파와 테이블이 전부인 공간.

어느정도 공적이어서 함부로 행동거지를 하기도 애매하지만,

또 어느정도 사적이어서 내가 열쇠를 함부로 열고 잠글 수 있는 공간.


그러라고 있는 공간은 아지었다지만,

모두가 돌아간 6시 이후 스탠드 하나 밝히고 있을때 집중되는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았다.


혁신센터 사무실도 그랬다.

누구도 찾지 않는 주말 오후,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앉아 쓰는 보고서만큼 빨리 써지고 잘써지는 글도 없었다.


남들과 같은 사무실에 들어앉게 되고,

고개만 돌리면 내 모니터가 들통나는 사무실에 있게되며

그런 소소한 재미들은 사라져버렸다.

모두가 쓰는 사무실,

철저하게 공적인 공간에서 나도 그냥 그런 공적인 존재가 되어버렸고

control+C control+V를 반복하는 생활속에 재미도 삶도 나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다 주말 오후 카페에 죽치는 버릇을 들였다.

아메리카노(딴에는 섞어 먹는게 싫다고 했지만, 제일 싼커피여서인 이유도 있다) 한잔 시켜놓고

하루종일 읽고 쓰고 음악 듣고 했다.

학교앞이어서인지 나와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꽤 많았고,

나중에는 지난주엔 왜 안오셨나 물어보고 싶을 정도도 되었다.


수성못 근처로 이사오고 나서 더 이상 카페를 이용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이 근처에는 죽치고 앉을 카페가 별로 없다.

함께여서 즐거운 사람들 속에 노트북 펴놓고 하루종일 죽치고 있는 캐릭터보다 민폐가 어디있으랴.


그렇지만 넉넉한 새벽 혹은 오전의 시간, 

반짝이는 연못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책읽는 것보다 좋은 것도 없긴 하다.


어느정도는 공적인 하지만 어느정도는 사적인,

너무 편하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지점의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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