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짱고책방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 이야기 <일의 기쁨과 슬픔>

by 짱고아빠 2021. 6. 28.
반응형

(비교적 최근이긴 하지만) 정세랑 작가의 책을 읽으며 21세기 우리네 작가들이 쓰는 글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었다. 박완서나 신경림으로 대표되던, 또 그보다 시간을 좀 더 두고 나타난 김영하 등의 비교적 젊은 작가들과도 정세랑, 김초엽 등 80년대생 작가들의 작품은 또 도드라지게 다르다. 이 책은 거기에 자신의 이름 한자를 더 새긴 86년생 작가의 단편집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더 이상 우리는 시대의 담론이었던 노동이니 인권이니 하는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오늘을 잘 살아내는가이다. 물론 이 역시 간단치는 않다.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듯한 민폐투성이 빛나 언니가 문득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월급을 포인트로 받게 된 거북이알님이 포인트를 돈으로 바꾸어 가며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마음, 버스를 놓치고 아메리카노를 덤탱이 쓰는 등 첫 출근길은 망했다지만 잘생긴 외국인이 직접 문을 열어주는 직장에서 새 삶이 시작될 것 같다는 설렘. 우리는 모두 한마디로 정의되기 힘든 마음을 가지고 오늘을 버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다. 후쿠오카까지 지유 씨를 만나러 간 지훈 씨의 이야기가 그랬고, 수도꼭지만 닦아놓고 사라진 주님 믿는다는 가사도우미 아줌마가 그랬고, 밤마다 오피스텔의 초인종을 누르던 많은 남자들이 그랬다. 모두가 번듯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있고 남들 모르게 그 욕망을 해소하며(또는 해소하려 하며) 살아간다.

이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꼭 나 같아서 부끄러웠고, 서글펐고 또 좋았다. 복잡한 감정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잠을 청했다.

분명한 건 우리는 정말이지 한국문학의 새로운 세대를, 한동안 없었던 황금세대를 맞이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설레고 행복해졌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