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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고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원호의 판타지 <슬기로운 의사생활>

by 짱고아빠 2021.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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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호.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슬기로운>의 첫 번째 시즌인 깜빵생활까지 그가 만들어낸 착한 세계를 좋아한다.

90년대 가요, 야구, 끝내 이루지 못한 첫사랑, 문득문득 알게 되는 가족의 애틋함, 그 아이가 누구든 간에 굶고 있으면 데려다 저녁을 먹여야 했던 골목 풍경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 쏟아지는 그의 앵글을 사랑한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 세계 안으로 걸어 들어가 그가 창조해낸 인물들과 더불어 살며 나오고 싶지 않다. 정말이지.

그의 세계에는 소위 꼬인 사람이 없다. 막장은커녕 그의 세계에 미움이라는 것 따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물론 몇몇 캐릭터가 예외이긴 하지만 결국 그 또한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더라)

그래서 그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매주 한두 시간 그가 창조한 세계를 체험하고, 현실로 돌아오자면 조금 심각한 현실 자각 타임이 시작된다.

행복하고 따듯하고 뭐 다 좋지만 사회생활이란 걸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안다. 현실에 이런 곳은 없다. 설마 오늘만 없을까. 과거는 보통 미화되기 마련이기에 그가 줄기차게 소환하는 1990년대를 살았던 이들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뒤에 2020년을 돌아본다면, 아마 미래의 나는 2020년을 추억하며 ‘그땐 참 좋았지’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섯 명의 주인공이 뿜어내는 의사로의 개인기도 충분히 따듯하고, 밴드가 되어 부르는 그때 그 노래는 포근하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쌓인 20년의 우정은 단단해 보이고, 병원장, 이사장 등 따듯함이라고는 1도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이 보여주는 의외의 모습도 신선하다. 간호사, 전공의 등 주변 인물들과의 시너지도 더 좋을 수 없을 정도고.

이 완벽한 드라마에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그런데도 조금만 아주 조금만 현실에 발 담가줬으면 어땠을까.

많은 이들이 SNS를 통해 슬의생을 보며 나도 저런 친구들이 있었으면 하는 글을 수도 없이 보았다.

할 수 있으면 남에게 미루고, 약자와 소수자를 멀리하고, 책임지지 않기 위해 가능한 관련자를 많이 만들어두고 그것도 모자라 끊임없이 기록하고 녹화하고 있는 삶, 나만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어떤 것도 단호하게 거절하고, 경계하고 보는 우리가 바란다.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저런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것인지 모르지만 우리 참 불쌍하고 어렵게 산다. 사람이 그립지만 사람을 멀리해야만 하는.

신원호가 그리는 세계는 그래서 판타지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영화가 있다. 한 사람이 세 명에게 착한 일을 하면 그 착한 일을 받은 이가 또 다른 이에게 착한 일을 해야 하는 착한 일 릴레이. 영화의 결국에 이 시스템을 고안한 소년의 장례식에 그의 도움을 받은 모든 이들이 촛불을 든다. 신원호가 만들어 내는 세계는 이 세계와 닮았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원래 착한 사람이었던 다른 이에게 옮아가면 그 사람도 착한 에너지를 뿜뿜하는 식이다. 예전엔 나도 이 모델이 세상을 바꾸는 길이라 믿었다. 물론 이 믿음이 현재도 유효하긴 하지만 이전처럼 튼튼하진 않은 것 같다.

사람에게만 의존하기에 세상은 그렇게 튼튼치 않아 보인다. 세상은 사람이 바꾸기도 하지만, 결국 시스템이 바꾼다고 믿는다. 옛날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건 아마 그 시절 우리가 사용하던 시스템이 그래도 공동체에 기인하고 있어서였다. 이 모든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마냥 개인에게 세상의 책임을 떠넘기는 건 아무래도 무책임하다.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거 좋다. 하지만 이제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하는 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괜히 드라마 잘 보고 삐딱해졌다.

근데 진짜 우리,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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