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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고책방

영혼의 어두운 밤 <살고 싶다는 농담>

by 짱고아빠 2021.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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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을 평가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평가받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영혼을 파괴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사안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독자보다 그래서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거나 마음대로 단정 짓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더 이상 삶을 소음으로 채우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바꿀 수 있는 작은 걸 떠올려보자는 생각이었다. 이제 나는 다음 책을 비롯한 사사로운 작업들과, 가난한 청년들이 나와 같은 이십 대를 보내지 않도록 만드는 일에만 집중한다. 다른 일에는 큰 관심이 없다.

(p.124)

나는 허지웅을 십수 년 전 트위터에서 만났다. 페이스북이 런칭하기도 전의 시절, 트윗의 국내유저가 고작 10만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씨네21 기자라고 했던가. 영화에 해박했던 그는 모두에게 공격적이었다. 단 한 명도 그의 눈에 거슬리는 발언을 하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는 정말이지 모두와 싸웠다. 허지웅=또라이란 공식이 좁디좁은 SNS 세계에 성립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트윗의 지난한 정치 얘기에 지쳐 나는 트윗 앱을 지워버렸다.

그를 두 번째로 만난 건 TV프로 <썰전>과 <마녀사냥>에서였다. <썰전>에서 그는 예의 문화평론가의 모습이었고(훨씬 누그러들었지만 아마도 방송이어서 그랬거니 했다) <마녀사냥>에서의 모습은 뭔가 내가 아는 허지웅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농담을 했고, 많이 웃었다. 그 이후에도 그는 꽤 많은 예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세 번째로 접한 건 정기구독 중인 잡지 씨네21의 칼럼과 그의 책이었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와 이 책 <살고 싶다는 농담>이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인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칼럼으로부터 그가 낸 두 권의 에세이집은 내가 이제까지 알던 허지웅과 또 달랐다. 그는 혈액암으로 암 투병을 시작했고 조금씩 회복 중이라고 했다. 이 책은 그가 암과 싸우던 시절 쓰여졌다. 그는 절망으로 가득한 밤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결심 때문에 살고 있고, 버티고 있다고 적었다. 이생이 언제 끝날지 모르나 남은 삶은 그의 삶을 옥죄였던 피해 의식에서 벗어나 더불어 살아가겠노라 적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한참을 울었다.

고마웠다. 농담처럼 살고 싶다고 말해줘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해줘서. 오늘 이 거칠고 거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제발 그러지 말라고 말해줘서. 그 말이 위로가 돼 한참을 울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그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어야겠다. 그리고 고맙다고 직접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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