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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고책방

어른의 일, 그냥 하는 일 <어른의 일>

by 짱고아빠 2021.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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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지난함도 마찬가지였다. 잘 쓰려고 하지 않고 그냥 쓰니 서서히 문제가 풀렸다. 화면 앞에 앉아 ‘잘하고 싶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짜증 나’, ‘하기 싫어’ 같은 아무 말을 써서 화면을 채워 넣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한두 문장이 턱 하고 걸려들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냥 쓰는 손’이 필요했다. 잘하지 못하는 나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문제였다.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더 강력한 건 ‘그냥 하는 마음’, ‘계속하는 마음’, ‘끝까지 하는 마음’ 이다. 최고를 찍고 그만두는 게 아니라 좋은 상태를 유지한 채 쭉 가는 것. 그렇게 가는 길이 나를 만들 것이다. 이 책이 내 손에 쥐어지고 나면 괴로웠던 나보다 끝을 본 나를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도 그냥 하는 마음이 나를 계속하게 할 것이다.

(본문 중)

나이가 서른 즈음 되면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고, 결혼도 하고 애도 두 명 정도 있을 줄 알았다. 여느 슈퍼히어로 못지않던 내 부모의 모습이 그 나이 즈음이면 내게도 나타날 것이라고 그렇게 어렴풋이 믿었고, 어느 순간 서른이란 나이에 쿵 하고 부딪혔다. (부딪혔다는 표현이 옳다. 정말?? 이라고 그 밤에 몇 번이고 되물었으니)

내게 닥친 서른은 내가 상상하던 서른과 너무 달랐다. 이제 막 직장에 들어간 어리버리 신입사원에, 연애는 정체기를 맞았으며, 무언가에 늘 쫓겨 살았다. 빠른 친구들은 그때부터 주식이나 부동산에 관심을 보였지만 꼬박 들어오는 월급도 감지덕지했던 나는 그 큰돈이 어딨냐며 앵무새마냥 읊조렸다. 나의 서른은 너무도 순진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10년 전 그날의 내가 자꾸 떠올랐다. 내일이 걱정되고, 결정이 망설여지고, 번듯한 직장이나 돈벌이는커녕 누군가에게 늘 손 벌려야 하고 미안했던 시절.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때의 난 참 예뻤던 것 같다. 주식 같은 거 몰라도 양심이 있었고 어떻게 살아보겠다는 포부가 있었고 목숨 걸고 지켰으면 하는 가치도 있었다. 그 모든 게 꼭 10년 만에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건지 나조차 조금 신기하긴 하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출근, 독립, 취향,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던 지난 10년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어른이 된다는 건 ‘그래도 괜찮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안하면 큰일 날 것 같던 그 것들이 사실 우리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이었음을 깨닫는 일, 하면 안된다고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던 것들도 사실 해보면 별거 아니란 걸 알게 되는 일. 거창하고 숭고한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하는 일상이 어쩌면 우리 인생을 끌어간다는 걸 어설프지만 조금씩 알게 되는 일. 그렇게 지금도 글을 쓰고 밥을 먹고 삶을 영위하는 평범이 내 삶임을 인정하는 일.

이렇게 조금씩 어른이 된다. 아직은 멀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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