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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고책방

우연에 우연을 더한 역사 <고양이를 버리다>

by 짱고아빠 2021.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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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특별하단다'를 입버릇처럼 외며 이 단어로 축복이란 걸 하며 자존감 끌어올리던 때가 있었다. 특별하다는 선언이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각기 다른 사명과 또 각기 다른 이유를 품고 이 땅에 태어났다. 하지만 이것이 'Special' 인지 'Unique' 인지는 조금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살면서 이따금 자의식 과잉의 괴물들을 만난다. 세상 혼자 사는 듯한 이들은 어딜 가나 큰 소리로 '나'를 외치고 나의 '특별함'을 과시한다. ‘나’이외에는 어떤 것도 관심 없는 그들을 바라보는 불편함은 오로지 주변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루키는 단편 <고양이를 버리다>를 통해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개인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뮫는다. 아버지는 2차 대전에 징집되었으며 전쟁은 청년의 삶을 통채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전쟁 통에 약혼자를 잃은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이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이야기를 통해 하루키는 인간의 존재을 이렇게 정의한다.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가면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되리라. (p.93)

하루키는 명징하게 선언한다. 우리는 사실 모두 누군가로 대체 가능한 존재다. 하지만 우리는 또 그 나름의 생각과 책무 이 땅을 살아가는 고유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고, 아무 날도 아니지만 모여 그 조각들이 모이면 비로소 역사가 된다. 일상이라는 작은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진 커다란 세상의 흐름에 나 또한 포함되는 것이다.

하루키는 어릴적 아버지와 함께 임신한 고양이를 해변에 버리러 갔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부자는 고양이를 해변에 놓고 왔는데, 돌아와보니 그 고양이가 돌아와 집 마당에서 ‘야옹’하며 부자을 맞이했고 서로 말은 못했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다행이라고 느꼈다는 짧은 이야기로부터 하루키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낸다.

어버이날이라 아버지를 뵙고 왔다. 당신은 늙어서 줄곧 당신의 젊은 날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역사는 계속 흘러가고 우리는 지금도 이 땅에 살아간다. 우연에 우연을 더한 역사를 만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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