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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고책방

책으로 위로받기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by 짱고아빠 202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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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이미지의 세계’란 사실 누구도 그 안에 살 수 없는 천국과 환영의 이미지 같은 것이다. 예쁜 카페에 가서 브런치를 먹고 커피를 마시더라도, 사실 사진을 찍는 몇몇 순간을 제외하면 그냥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고 각자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유행하는 여행지에 가더라도 아름다운 풍경 앞에 황홀하게 머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호텔의 수영장에서도 그냥 사진만 찍고 숙소로 돌아가 텔레비전이나 보는 경우가 태반이다.(p.49)

대부분의 사람은 정답에 가깝게 살고 있다. 또한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지도 않는다. 문제는 정답이 실현될 가능성이 너무 적어졌다는 점이다. 더 이상 앎과 모름은 큰 문제가 아니다. 알아도 별반 소용이 없다는 데 진정한 문제가 있다.(p.59)

그렇게 불안에 많은 비용을 지불할수록 결국 손해 보는 건 불안에 지배당한 사람밖에 없다. 그는 보다 풍요롭게 누릴 수 있었던 시간을 모두 빼앗긴 셈이 된다. 아마 우리가 불안에 버린 시간들 중 상당수는 보다 나은 마음으로 세상을 거닐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무엇에 보다 마음이 이끌리는지를 섬세하게 알아 볼 수 있는 몇 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불안은 늘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를 속삭이며 그것을 향해 절박하게 매달릴 것을 요청하지만, 사실 그만큼 시달리지 않아도 미래는 도착할 만한 곳일 것이다.(p.75)

과연 내려놓는 게 중요하고 포기가 중요하다고 한들 그게 가능할까? 이미 포기한 것에 대한 사후적인 위로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삶에서 끌어안고 견뎌내는 것보다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 과연 우리 삶을 더 낫게 만들까? 나아가 그렇게 노력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 실제로 우리 삶에 이로울까?(p.96)

나는 내가 들어온 문 안에서 가장 좋은 삶을 살고자 애쓸 것이다. 여기서 가능한 행복, 가능성, 방향들을 계속 찾으며 나와 나를 둘러싼 삶을들 좋은 것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열지 않은 문에 대한 그리움도 아마 지니고 살아갈 것이다. 때론 상상하고, 때론 엿보고, 때론 슬퍼하면서 말이다.(p.104)

부동산이 악질적인 이유는 실제로 일관되게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는 데 있다. 느긋한 태도로, 현명하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일상의 행복을 누리던 어느 가족의 삶을 박살내버린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만한 어떠한 합리성 없이 돈을 쓸어 담는 어떤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평생을 성실히 살아도 얻을 수 없는 돈을 그저 주워 담는 존재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난다는 이야기가 일상의 평화에 침투해 조급함, 강박, 초조, 불안을 만들어 낸다(p.214)

고 마광수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남긴 인터뷰가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여자 친구 한 명이’ 참 아쉽다고 말했다. 부모도, 자식도, 부인도 아니다. 그런 형식적인 가족관계보다는, 그런 것이야 아무래도 좋으니 정말로 ‘여자 친구 같은 사람’ 한 명만 있으면 그는 되었던 것이다. 저 사회 속의 수많은 타인, 대중, 문단이나 학계의 사람들이야 어떻든 내 옆에서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내 눈빛을 집요하게 바라보며, 나와 함께 숨 쉬고, 나로 인해 살아 있노라고 말하는 그 누군가가 한 명만 있으면 되었다.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주고, 내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해주고, 함께 밥을 먹고 아름다운 것을 볼 사람 한 명이면 되었다.(p.252)

글의 보석같은 부분은 더 있지만 그러다 보면 책 한권을 베낄 것 같아 줄인다. 여기 더 보탤 말이 없다. 정지우 작가의 페이스북을 팔로우 하고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페이스북에 쓴 글들이 책이 되었고 글들을 인스타그램, 젠더, 공동체의 세 가지 주제로 묶었다.

주제에 따라 이미 알고 있는 주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SNS와 젠더 그리고 공동체에 대해 나름의 답을 가진 이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다소 상반될 수 있는 견해에 어느 쪽으로 치우치기 보다 담담하게 이 주제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해 보여준다. 읽다보면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페이스북에서 내가 가장 많이 공유한 글은 정지우 작가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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