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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퓰리처상 사진전

by 짱고아빠 201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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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문화생활이라고

라이프사진전, 내셔널지오그래피 같은 사진전에 매년 다녔다.

앞의 두 사진전은 내가 멍청한 탓도 있었겠지만,

사실 별 감흠이 없었는데

이번 퓰리쳐상 사진전은 머리속에 선명한 사진이 몇장 있었다.

이런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 라고 카메라를 들때마다 느낀 까닭일런지도 모른다.



<1858, 어린이의 믿음과 신뢰_윌리엄.C.비올>

어떤 시위의 한 장면이었던 것 같다. 경찰관이 아이에게 여기에 서 있으면 위험하다고 알려주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아이와 눈을 마주하는 이도 아이도 스스럼이 없고 두려움이 없다.

최근에 스크럼 꽉 짠채로 긴장한 표정으로 TV에 자주 등장하는 여느 나라 경찰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좀 더 그랬을지도.

하긴 그게 그네들 탓이겠냐만은.


<1977, The Soiling of Old Glory"_Stanley J. Forman>

자유의 상징인 성조기가 흑인탄압의 무기가 되는 충격적 사진.

사실 이 사진보다 더 마음을 잡은 사진이 있었는데, 아무리 구글링을 해도 찾을 수 없었다.

리틀록 나인 사건에 관한 사진었는데, 지금으로부터 불과 60여년전의 이야기다.

당시만 해도 흑인과 백인이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없었는데, 아이젠하워가 연방정부에서 흑인과 백인의 학교를 통합하는 강제령을 내려버리고,

이에 주지사 및 주민들이 반발하자 연방정부는 아예 군인들을 동원해 이 9명의 흑인학생들의 등하교를 책임진 사건이다.

결국 이 9명의 졸업생은 최초의 흑인 졸업생이 되는 기념비 적인 사건인데,


아! 내가 찾던 사진은 이들의 등교를 막기위해 혼연일체로 들고 일어난,

크리스쳔들의 시위 사진이었다.

언젠가부터 기독교가 주류 종교가 되고,

우리가 힘을 갖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언제나 그랬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을,


장애인을, 흑인을, 동성애자를

우리는 멀리했다.

우리는 그랬다.

그 사진 속의 God이라는 글자를,

그 당당한 크리스쳔들의 표정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난 그랬다.


<2008, 마지막 경례 스토리_토드 헤슬러>

이라크 전에 참전해 전사한 군인의 내 가족을 잘 돌보아 달라는 부탁에,

그의 장례 전날, 남편의 옆에서 그와의 추억이 담긴 음악들로 밤을 지새고 있는 부인과,

그녀를 지키고 있는 이를 담은 사진.


사랑은.

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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