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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강신주 선생에 관한 단상

by 짱고아빠 201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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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수영 선생을 통해 강신주 선생을 처음 접한 나는 그에게 큰 불만은 없다.

그는 내가 궁금해하는 김수영 선생을 존경했고, 그래서 그를 우리게 소개해줬고

지금은 나 역시 김수영 선생을 존경하고 그의 글을 찾아 읽기까지하고 있다.

그런 역할이었기 때문에 강신주 선생에 대한 나의 감정은 대체적으로 호감이고

그 호감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강신주의 <감정수업>인데 그것조차 난 크게 나쁘지 않다)


강신주 선생이 <힐링캠프>에 출연하고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불필요한 논의들이 이곳저곳에서 게시되는 모양이고,

대부분 감정에 기반한 그런 논의에는 끼지 않는 것이 이래저래 좋다.

그렇지만 궁금해지는 지점은 분명 있었다.

도대체 왜? 강신주가 뭐 틀린말 하는 것도 아닌 듯한데 도대체 왜?


1. 누가 철학자 혹은 인문학자인가?

어느덧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인문학은 그 역사만큼이나 정의도 다양해지는 추세이다.

'나는 책읽는거 싫어해요'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인간들도 인문학을 입에 올리니 인문학이 대체 뭔가싶기도 하다.

강신주를 비난하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그가 자칭 철학자라 부르는 걸 불편해 하는 듯 하다.

물론 그가 철학자라는 용어로 대중과 선을 긋는 모습이 분명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는 사실 니체가 이야기한 대중이 강신주에 이르러 그대로 계승되는 되는 모양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스스로 초인이라 생각한 니체는 스스로는 철학자라 하지 않았을지언정 후대는 그를 철학자로 임명했다.

강신주의 언변이 재수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자칭이든 타칭이든 철학자라고 하면 그런 것이다.

이건 인문학에 기본적으로 깔린 기제이기도 하다.

학교 근처에도 간 적 없지만 지금도 인도 길바닥에 널린 현자들,

그들을 철학자라 부르지 못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개똥철학을 읋을지언정 나도, 당신도 철학자일지 모른다.

강신주가 내가 철학자다 라고 하는 속내는 이런 것이지, 지가 철학을 공부한 알량한 박사라는 자뻑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박사라고 했겠지.


2. 힐링의 정의

언젠가부터 힐링이 정말 대세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위로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정글이 되어버렸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그치만 사람들의 삶이 다 다르듯이 힐링의 방법 또한 제각각 일 수 밖에 없다.

어떤 이에게는 위로의 말 한마디, 눈물 쑥 빼는 따뜻한 허그가 힐링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게 낯간지런 누군가는 좀 더 달리라는 채찍질이 힐링의 도구가 될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난 자기개발과 힐링이 싫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강신주의 이야기 속에는

'너 자신과 부딪혀라', '결국 네가 이겨내야 한다'라는 메세지가 분명 존재하고, 

그렇기에 결국 그의 메세지가 포장지를 바뀌씌운 힐링의 다른 버전이라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보인다.

하지만 시대가 원하는 힐링에 부합하지 않는 게 강신주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꼰대가 뱉어내는 말의 향연에 울컥하는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안들으면 그만이지 그렇다고 돌을 던질거까지야 있나.


나도 잘 정리되지 않지만,

지금 던져지는 강신주 선생을 향한 돌들은 이해하기 힘들만큼 많아보인다.

물론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고, 시스템의 문제로 하자면야 끝도 없겠지만.

그치만 인문학을 알고, 그 기치대로 살아가려는 이들조차 그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에게 욕지거리를 내뱉는건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정말 변절했는가?(표현이 좀 웃김), 

그가 인문학을 팔아먹는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인가?

여기 '예'라고 그리 쉽게 단정할 수 있는가?


글쎄, 아직까지의 나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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