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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고영화

경주_어제와 다른 오늘

by 짱고아빠 2015.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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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죽음으로 한국을 밟은 남자는 선배의 영정 앞에 7년전 그와 함께 갔던 찻집을 기억해 낸다.

남자는 선배의 자취를 좇아 무언가에 이끌리 듯 경주를 찾는다.

더 정확히 그는 선배와 함께 간 경주의 어느 찻집에 걸려 있던 춘화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영화가 늘 그렇듯 만나게 되는 슬픈 눈빛의 모녀, 대학 후배, 관광안내원 그리고 경주의 여신이라 불리는 찻집 주인 윤희 그리고 술자리.

영화는 어딘가 홍상수의 플롯을 그대로 따르는 것 같지만 메가폰을 잡은 이는 홍상수가 아닌 장률이다.


경주.

도시 전체가 무덤인 도시. 어느 곳에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능이 보이고,

베란다를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죽은 이들의 공기가 살아있는 이들을 감싸는 도시.

그렇지만 그 공기가 눅눅하거나 무겁지 않고 오히려 고즈넉하게 살아있는 이들의 삶에 녹아있는 도시.

영화는 그 도시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하루 동안의 여정을 가만히 밟아간다.


영화의 시작, 그는 죽음을 마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북경대 교수인 최현은 선배의 죽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선배의 장지인 상갓집에서의 또 다른 선배는 죽은 선배의 어린 아내가 선배를 잡아먹은 거라 했다. 아내는 어리고 예뻤다.

그리고 떠난 경주에서 최현은 대학후배를 서울에서 불러내 만나게 되는데 시종일관 불편한 기색으로 최현을 대하던 후배는, 서울로 가는 기차에 오르기 전 최현의 아이를 임신했었다고 말한다. 아이는 이미 낙태로 죽은 지 몇 년이 흘렀다. 후배는 의처증이 심한 남편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또 그녀는 거리의 점집 할아버지에게 다시는 생명을 갖지 못할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춘화를 보기 위해 찾은 찻집은 이미 주인이 바뀌어 있고, 춘화가 걸린 자리도 새로운 벽지로 도배가 끝났다.

3년 전 이 찻집을 인수했다는 찻집 주인 윤희. 최현은 이 찻집을 두 번 찾는데 처음 춘화나 묻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던 윤희는 두 번째 방문에 최현의 다른 모습에 끌리게 된다.

해는 저물고 저녁, 윤희의 초대로 참여한 된 술자리. 남자는 오늘 낮에 두 번이나 마주친 모녀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그곳에서 전해 듣는다. 

술자리가 파한 후, 윤희의 아파트. 윤희에 이끌려 그녀의 집에 도착한 최현은 윤희의 남편이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생전 남편이 걸어두었다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윤희에게 들려준다.


“사람들 흩어진 후에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


이튿날 새벽. 최현의 아내에게 전화가 오고 아내는 최현에게 현이 좋아했던 노래를 들려준다. 둘은 화해한다.


최현은 동이 트자 윤희의 집을 나선다. 

그런데 모든 풍경은 어제와 미묘하게 달라져있다. 

의처증이 심한 후배의 남편은 남자를 좇아 경주로 내려와 있다고 한다. 

후배는 남편이 선배를 죽일지도 모르니 도망가라고 말한다.(살라고 한다) 

어제 만난 거리의 점집 할아버지는 몇 해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고,

후배와 마실 것을 샀던 슈퍼는 이미 흔적을 찾을 수도 없다.

어제까지 물이 흘렀던 냇가는 이미 말라버렸으며 그럼에도 물 흐르는 소리는 환청처럼 아득히 들려온다.

새 날이다. 하지만 언젠가 본 듯한 날이기도 하다.

삶은 늘 그렇게 죽음과 다르지만 같은 모습이다.


영화를 보며 가장 의아했던 점이 윤희와의 하룻밤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다.

윤희는 방문을 닫지 않았지만, 최현은 한참을 그 방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최현은 아마 낮에 만난 대학후배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는 죽음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이튿날 대학후배가 전화로 그를 살려주는 것은 이 밤의 보상일지도 모른다.

(아마 이튿날 최현을 좇는 사람은 두명이었을 것이다. 대학후배의 남편 그리고 윤희를 사랑하는 경찰, 그렇지만 최현은 이날밤 면죄부를 얻는다. 나는 홍상수와 장률이 결정적으로 다를 수 있는 점이 여기라고 생각하는데 홍상수가 삶을 비틀어 헛웃음을 유발한다면 장률은 아직까지는 인간이 옳는 일을 행할때 옳게 된다고 믿는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은 따뜻하다.)


영화의 마지막,

감독은 7년 전으로 돌아가 최현이 그토록 찾던 춘화를 재생해 낸다.

선배들과의 찻집. 춘화 그리고 또 윤희.

춘화와 윤희를 마주한 최현은 웃는다. 큭큭대며 웃는다.

최현은 윤희와의 하룻밤을 기억해 냈을까.

영화는 3년 전에 가게를 인수했다던 윤희를 7년 전에 등장시킴으로 시간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어제와 다른 오늘.

찬란하게 빛나던 경주가 무덤의 도시가 되고 그 무덤의 공기가 새 삶을 감싸 안는 것처럼,

무덤 속을 거닐던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내일의 삶은 더 반짝거릴 지도 모른다.

물론 반짝거리는 오늘이 지나면 또 무덤위에서 우리는 내일을 맞이할 수도 있다.

삶과 죽음은 늘 그렇게 다른듯 같은 모습으로 우리 주변을 서성인다.

그리고 오늘을 선택할지 내일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사람들 흩어진 후에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


옳다. 사람들은 언젠가 흩어질 것이다. 하지만 달은 뜨고, 하늘은 언제나 그렇듯 맑다.

산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며, 상처가 될 일 밖에 없는 삶과 화해하는,

죽음으로 시작해 삶을 이끌어 낸 꿈같은 최현의 방랑기는 이렇게 끝난다.




경주 (2014)

Gyeongju 
7
감독
장률
출연
박해일, 신민아, 윤진서, 김태훈, 곽자형
정보
드라마 | 한국 | 145 분 | 201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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