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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고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사랑이 옳다

by 짱고아빠 2015.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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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대한민국 최고의 로멘티스트 할아버지가 있다.

할아버지눈에 할머니는 아직도 예쁘기만한 여자다.

'할망구가 늙어 노망이 났나'로 시작하는 우리 주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하긴 그러니까 <인간극장>에도 나오고 영화로도 제작되고 했을거다.


영화는 철저히 시나리오를 배제한 채 굴러가는 듯 하다.

마당을 쓸다가 문득 낙엽을 주워들고 할머니와 장난을 치는 할아버지,

눈을 쓸다말고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드는 흰머리 지긋한 연인,

수십년을 살았을 집인데도 밤중에 화장실 가는게 무서워 기어이 할아버지를 앞에 세워두고 노래까지 시키는 할머니.

시나리오였을지라도 차마 오글거릴 것 같은 행동들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참 천연덕스럽게 해낸다.

카메라를 들이댔을지언정, 그건 그들의 삶이었다는 반증이다.


영화는 젊어 연애가 한창 뜨거울 시절,

이렇게 해줄게, 저렇게 해줄게라고 지키지도 않을 공염불을 날리던 연인의 미래를 현재로 가져온다.

내 옆의 연인과 손을 꼭 마주잡고선 우리도 저럴 수 있을까,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니면 어쩌지, 저런 사람이랑 살면 좋겠다란 이제까지 안해왔고

앞으로도 안해도 될 걱정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그저 부럽기만 한 삶에서 정당성을 확보한다.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어쩌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물론!


하지만 영화는 노부부의 자녀를 영화에 등장시키며 노년의 로멘스와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장남이 혹은 장녀가 이 부부를 모실 것인가, 

부모의 명절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부모의 병원비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영화에는 차마 나오지 않지만 재산의 분할 역시 자녀와 부모에겐 풀어내야할 숙제일 것이다.

자녀들은 이러한 현실에 부모앞에서 틀어지고 할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할아버지는 자녀들의 오고가는 고성 앞에 차마 어쩌지를 못한다.


이미 세상을 다 살아버린 이들에게 사랑은 삶의 전부일지 모르나,

삶을 영위해가야 하는 이들에게 사랑은 어쩌면 잠시 제쳐두어야만 할 감정일지 모른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어렵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서로의 삶을 나누고 아끼는 일이 어디 보통일인가?

하지만 냉정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중 누군가에게 사랑은 사치의 영역에 속하는 일일수도 있다.

사랑하지만, 죽도록 사랑한다지만 집이 없고 직업이 없어 결혼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이게 사랑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건,

굉장히 세련된 꼰대놀음으로 보는 게 옳다.


문제의식은 충분히 옳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고 그래서 이혼율도 높아지고, 

사랑이 한번 씹고 뱉어내는 껌처럼 소비되는 시대. 맞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산다.

그리고 그 사랑도 계급이 되어 자신과 비슷한 수준(경제적)의 누군가를 만나야만 사랑이란 걸 꿈이나 꿔볼 수 있는 시대에,

사랑타령이라. 글쎄. 

최면이다.

지금 네가 속한 현실은 퍽퍽하지만 사실 그 퍽퍽함은 '사랑이 없어서 그렇다'라는 최면이다.

영화를 보며 마음 한 구석이 꿍했던 건, 

'아 이 감독 도무지 현실을 모르네'라는 그 답답함이었을게다.



영화는 두 개의 죽음이 등장한다.

노부부가 젊어 지키지 못했던 아이들의 내복을 사서 먼저 그 강을 건너 아이들을 만나는 이가 입혀주자는 약속,

그리고 할아버지의 죽음.

영화 제작진조차 대비하지 못했던 죽음을 대하는 할머니는 다소 담담한 듯 했다.

강아지 "꼬마"의 죽음에도 애닯게 울던 할머니는 오히려 할아버지의 옷을 미리 정리하고, 

할아버지의 기억들을 미리 정리해나갔다.

장례과정에서도 할머니의 감정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먼저 가 기다리라는 듯이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냈다.

하지만 모두가 떠나고 할아버지의 무덤.

할머니는 해질녘까지 할아버지를 떠나지 못한다.


이제는 가야할 시간이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옮기다가도, 

그만 무너져 내려 하염없이 운다.



젠장. 감독이 옳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호감이 사랑으로 소통되는 시대일지라도,

돈이 사랑을 집어삼켜 사랑을 심각하게 오염시킨 시대라 할지라도,


진짜 사랑은 옳다.

그 사랑이라면 전부가 맞다.

다만 알면서도,

누구나 다 그 사랑을 꿈꾸면서도 금새 홀라당 까먹고

어떤 조건을 달고 있으니 그게 문제인게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014)

My Love, Dont Cross That River 
8.9
감독
진모영
출연
조병만, 강계열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85 분 | 201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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