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짱고영화

동경가족_가족의 의미

by 짱고아빠 2014. 8. 20.
반응형



고집스레 넥타이를 동여맨 꼬장꼬장한 영감과 어딜가나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자상한 어머니,

직업이 의사인 똑똑한 큰 형과 알뜰살뜰하게 미용실을 운영하는 누나,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일용직을 전전하지만 꿈꾸는 고집불통 막내.


누가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정의된 현대가족의 형태이다.

물론 지금은 셋 씩 낳으면 효도하는 거라 말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기억을 조금만 뒤로 돌려 우리 어릴적을 추억해보자.

그땐 누구나 셋쯤은 형제자매로 두고 살았으니.


영화는 일본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1953년 작 <동경이야기>의 리메이크판이다.

우리가 전쟁통에 경제성장에 열을 올리던 그들이었으니,

아마 우리의 7-80년대가 아마 그들의 50년대와 비슷했을게다.

도시가 세워지고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아이들이 상경하던 시기,

소팔고 땅팔아 아이들 대학보내며 오매불망 그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던 시기.

<동경이야기>가 반영하던 그 시대와 <동경가족>이 그리는 2014년의 모습이 닮아있다고 영화는 믿는다.

그리고 착하디 착한 가족의 이야기를 2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렇다 할 배경음악 하나 없이 우리게 들려준다.


영화는 노부부가 동경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여행을 축으로 이루어진다.

큰아들과 딸의 집에 차례로 짐을 푼 부부는,

영감 친구의 사당에만 들렀다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부부의 여행은 

아들과 딸이 부부를 호텔로 모시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아들과 딸이 보내준 고급호텔. 

좋은 침대에 커다란 TV, 끝내주는 야경이 부부를 기다리지만 천상 시골사람인 노부부는 이런 신세계가 불편하기만 하다.

결국 화장실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놓고 딸의 집을 찾아가지만,

오늘은 그들을 모실 수 없다는 말에 영감은 친구의 집으로, 아내는 막내의 집으로 각각 발걸음을 돌린다.


"오늘 밤은 따로 자겠구먼"

할아버지의 서운한 듯 서운하지 않은 듯한 툭 내뱉는 말투가 찡했던 건 나뿐이었으려나.


그날 밤,

할아버지는 며느리 눈치에 재워줄 수 없다는 친구의 얘기에 한동안 입에도 대지 않던 술에 취한다.

할머니는 막내의 집에서 반가운 며느리감(노리코)을 발견하고는 사라진 마지막 걱정에 마냥 좋기만 하다.

아버지의 상실감과 어머니의 기쁨.

늘 함께였지만 하룻밤새 갈라진 감정의 틈은 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영원히 어긋나버린다.

할머니는 자신의 기쁨의 이유를 설명할 시간이 없었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서러움을 표현할 유일한 언덕을 잃었다.


길었던 여행은 끝났다.

할아버지는 하얀 재가 되어버린 할머니와 고향으로 돌아온다.

다시는 동경에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남긴 채.


어느 가족에나 있는 보이지 않는 깊고도 큰 골.

그 골의 다리 역할을 했던 어머니가 죽었다. 가족은 모두 모였지만 누구도 말이 없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지만 그 뿐, 딱히 할말도 하고 싶은 얘기도 없다.

아버지의 등은 딱딱하고, 아들과 딸은 바쁘다. 

그 틈바구니에서 막내와 노리코는 길을 잃는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마음 뿐이다.

진심으로 돌보아 주고 생각해 주는 것,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이 가족이 노리코와 막내의 진심에 회복되어 가는 과정은 그래서 따뜻하다.


가족의 의미를 점점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1953년의 뻔한 이야기가 2014년을 살아가는 우리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 가족의 의미를 우리가 어쩌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동경가족 (2014)

Tokyo Family 
8.2
감독
야마다 요지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아오이 유우, 하시즈메 이사오, 요시유키 카즈코, 니시무라 마사히코
정보
드라마 | 일본 | 146 분 | 2014-07-31


반응형

'짱고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히르_행복한 사람  (0) 2014.10.13
돌에 새긴 기억_기억하라  (0) 2014.10.11
그녀가 부른다_고독과 관계의 역설  (0) 2014.08.20
산타바바라_삽십대의 사랑이야기  (0) 2014.08.11
그 사람 추기경  (0) 201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