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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고영화

그녀가 부른다_고독과 관계의 역설

by 짱고아빠 2014.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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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너무 과하거나 뻔한 이야기는 재미없다.

영화에서 누군가 잘모를때나 신비로운 것이지, 알게 되면 시시하고 재미없다는 말은 아이러니 하게 영화를 보고 되려 감독에게 하는 말로 들린다.

멋을 잔뜩 부르지만, 어딘가 쑥쓰런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야기들.

하지만 그렇기에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그녀가 부른다>는 그런 영화다.


그녀가 부른다.

뚜렷한 형용사나 목적어도 없이 대뜸 내지르는 중의적 의미의 제목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혼자 살고 싶어 시골에 내려가 영화매표소에서 일하는 진경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부른다.

유부남과 시시한 불륜의 관계를 맺어 결국 그의 부인을 불러내고,

전자대리점 최대리의 짝사랑의 대상이 되어, 최대리를 사랑하는 당돌한 여고생까지 함께 부른다.

서론없이 본론만 툭툭 내뱉는 성격덕에 사무실에서 매표소까지 직접 부장님을 불러 내리기도 하고, 

늘 부장의 이야기를 들고 나타나는 함께 일하는 언니를 부르기도 한다.

진경을 뮤즈라 부르며 사귀자 징징대는 대학동기를 부르기도 하고,

시골에서 혼자 내려와 궁상인 탓에 죽음을 목전에 둔 엄마를 전화로 소환하기도 한다.


혼자가 되고 싶어 연고도 없는 시골마을까지 내려간 여인은,

자신의 의도와 반대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부르고 또 불러낸다.

지독한 고독과 관계의 역설.


진경은 끊임없이 '밥먹었냐'고 전화로 물어오던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고야, 비로소 혼자됨을 자각한다.

그토록 '밥먹었냐'는 질문이 싫었지만, 엄마가 사라진 후 최대리가 툭 던진 '밥먹었냐'는 질문에 오열한다.

사랑이 뭔지, 사랑은 어떻게 하는건지, 사랑을 도대체 왜 하는건지. 

그제야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이들에게 질문해 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경이 신비로울 때 진경 곁에서 징징대던 그들은 이제 진경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유부남도 떠나고, 대학동기도 떠나고, 최대리도 떠난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내도록 나이와 어울리잖게 현실적 대사를 뱉어실며 진경을 적대시하던 여고생은 멘토처럼 진경을 따르기 시작한다는거다.

이것도 희망이라면 희망이랄까.

어쨌든 드디어 성악과 출신이면서도 노래를 한번도 부르지 않았던 진경은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김종찬의 <산다는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나를 포함해서 혼자인 이들이 참 많다.

그리고 역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괜찮다"고 말하며 살아간다.

혼자인게 더 편해요. 정말?


영화의 작은 인물 중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계속 표를 바꾸러 오는 아저씨가 있다.

1회 주세요. 죄송한데 2회로 바꿔주세요. 죄송한데 3회로 바꿔주세요. 진짜 안바꿀게요 4회...

진경의 감정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영화 후반 진경이 다짜고짜 따지고 들자 아저씨의 대답이 이렇다.


"영화를 보고나면 뭐 할지 모르겠어서요"


외로운데 아닌 척, 뭘할지 몰라 바쁜 척, 상처받을까봐 관심없는 척한다는,

너무도 정직하게 주제를 뱉어버리는 진경의 대사에 쿵하고 마음이 내려앉은 이가 비단 나뿐이었으려나.


철저하게 고독해야 하지만, 그것을 즐기고 사는 건 그닥 좋은 일이 아니다.

많은 이들과 관계하며 살 필요는 있지만, 그 안에서 나를 잃어버리는 것 또한 달갑지 않다.

고독과 관계의 어딘가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성악과이면서도 노래를 썩잘하지 않는 진경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뭔가 울컥하는 것이 올라온다.

괜찮다고 믿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라는 또 다른 속삭임.

하긴 원래 우리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덧1. 윤진서라는 배우 정말. 와. 진짜. 이야.

덧2. 포스터 만든 친구는 영화판에 그만 있어도 될 듯.




그녀가 부른다 (2013)

8
감독
박은형
출연
윤진서, 오민석
정보
드라마 | 한국 | 97 분 | 201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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