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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고영화

비포선셋

by 짱고아빠 201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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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9년을 기다렸겠지만,

억세게 운좋은 나는 딸랑 이틀을 기다리고 그들의 재회를 볼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나는 또 이틀을 기다려 그들의 9년뒤를 볼 수 있다. 크크.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라는 가사에 밤을 새워 밍숭거리던 삼십대도 지나가고,

비포선셋의 그들과 나는 같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성공한 소설가가 된 제시가 홍보차 들른 프랑스 파리,

다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그에게 주어진 1시간은 오롯이 영화의 런닝타임이 된다.


키스를 위해 설익은 작업멘트를 날리던 제시는

결혼을 하고 애를 가진 그저그런 아저씨가 되었고.

그 남자에 이끌려 기차에서 내린 셀린느는

살이 조금 빠졌고 미제국주의에 맞선 투사가 되었다.


9년의 세월은 그들을 그렇게 바꾸어 놓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야기한다.


빈곤, 환경오염, 희망, 섹스와 결혼.

페미니즘, 종교, 인연에 대해 이야기한 비엔나에서의 대화보다

그들의 대화는 조금 더 땅으로 내려온 느낌이다.


전작의 그들이 사실적이지만 열정과 낭만으로 가득차 있었다면,

비포선셋에서의 그들은 제법 현실과 맞닿아있다. 


시간에 쫓겨 결혼은 했지만 행복하지 않은 제시,

만나던 남자들이 다 그녀를 떠난 것이 서글픈 셀린느.


삶과 사랑에 치여버린,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를 아는자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래서 나와 같은 30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대화가 내겐 더할나위 없이 정겹다.


제시는, 셀린느의 집을 떠났을까?

비엔나의 여러곳을 전전하며, 

공간의 미학을 보여준 이들은

파리 깊숙한 곳에서 영글지 않은 9년의 시간을 재현해낸다.

마음이 충분하다면 그리 문제되지 않을 시간.


소파 깊숙히 묻혀 음악에 맞춰 흐느적거리는 셀린느의 모습을 바라보는 제시,

또 링클레이터 감독은 화면을 닫아버린다.


이후 남겨진 장면들은 우리의 몫이다.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불현듯 누군가를 떠올린 건 비단 나뿐이려나.


전작도 그랬지만,

이 감독 옛 연인을 떠올리게 하는 재주있다.



비포 선셋 (2004)

Before Sunset 
8.9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버논 도브체프, 루이즈 르모이네 토레스, 로돌프 파울리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미국 | 80 분 | 200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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