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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보지마시오)

끔찍한 농담

by 짱고아빠 2012.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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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초에 회사에서 나누어 준 '회사어로 말하라'라는 책이 있었다.

대략 상사의 기분을 적당히 맞추어 주는 것이 회사어고 그렇게 말해야만 좋은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뭐 이딴게 책 내용의 전부였던 기억이 난다.

(사실 몇쳅터 흟어보다 쓰레기로 간주하고 쓰레기통에 던졌다가 누가볼까 다시 꺼내 대충 던져놓은게 지금은 어딨는지도 모르겠다)


직장생활 4년차.

장민혁 대리.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직장생활 전에 나는 글도 잘 쓰는 편이었고,

사진 찍는 취미도 가지고 있었으며,

버겁지만 사랑도 제법 오래도록 하고 있었다.

똑똑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안되는 돌팅이는 아니었기에

공부든 일이든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에 능했으며,

마음 먹으면 거의 해내고 마는 사람이었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가졌으나,

지랄같은 성격탓에 소수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었고(어찌됐든 사람이 늘 옆에 있었다는 말이다)

싫으면 싫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며,

(나를 포함한)개인이 받을 데미지보다는 조직이 먼저이고,

그 조직보다는 사람이 먼저였다.

빈곤이라는 내 인생의 뚜렷한 숙제를 해결하고 싶어했으며,

그 숙제를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무언가 계속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열정은 내 인생에 빼놓기 어려운 단어였으며,

나는 빨강을 사랑했다.


4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주관적이지만,

나는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실은 그저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글도 못쓰며, 사진도 못찍는 편이다.

내가 세운 계획은 일을 해보지 않는 놈의 객기에 지나지 않으며,

계획서 군데군데의 오타와 틀린 숫자배열은 일을 건성건성한다는 증거가 되었다.

일을 추진할때에 괜히 나서봐야 중간이나 가면 다행이기에 왠만하면 닥치고 가만있는게 더 좋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물론 몸으로 하는 일은 가장 먼저 앞장서는게 중요하다)

내가 옳든(사실 거의 옳지 않았다) 아니든 간에 내 목소리로 지껄이는 것은 굉장히 버릇없는 짓이라는 걸 배웠다.

이 전쟁같은 삶의 틈바구니에서 등신같이 나는 사랑도 잃어버렸다.

창의성은 지나가는 개에게나 줘버리고, 남녀노소 누구나 불편하지 않을 지극히 평범한 단어의 사용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괜시리 누구랑 붙어 지내다 다른 다수의 손가락질을 받는 짓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혼나는 건 죽기보다 싫기에, 조직이나 프로그램 따위 사고나지 않을 정도로,

그저 평범하고 무난하게 운영하는 것이 운영의 첫째 원칙이 되었으며

괜히 일 크게 만들어 시끄러워지는 것 보다 사람따위 그냥 입다물게 하는게 지혜라는 것도 배웠다.

출근길, 유일한 내 인생의 숙제는 오늘도 무사히가 되었으며,

열정보다 안전, 초록색이 나를 대표하는 색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휴대폰에 저장된 수많은 전화번호 중 이 밤에 전화애서 '나야'라고 말해도 괜찮을 전화번호..




2012년 10월 16일,

저것도 사는거라고 오늘도 내일을 위해 먹고 잔다.

끔찍한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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