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출장을 마치고 집에 왔다.
대구의 더위는 여느해보다 더 기승을 부리고 있고,
밖은 시원해도 집은 여전히 텁텁한 작은 방에 선풍기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잠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꿈인지, 실제 일어난 일인지.
아직도 가물거리는 어제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렴풋이 잠들어 버린 저녁,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바람에 무언가가 움직이겠거니 하였으나
바스락거린 것은 바로 내 눈앞의 검은 물체.
나는 똑똑히 보았다.
눈이 밝고, 몸은 검지만 잘생긴 듯한 그 녀석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쁘지도 그런것 같지도 않은 걸음으로 내 방문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것을.
분명히 그 물체는 고양이었다!
더위 현관을 열어놓고 잠이 들었나보다.
그새 집안으로 슬금 기어들어왔을거라 생각했다.
놀란 마음에 온집의 불을 밝힌채 그 녀석이 혹시 다른 곳에 숨어있지 않나 샅샅히 뒤져보았다.
다행히 내가 본 그 녀석은 어느 곳에서 보이지 않았다.
현관을 잠그고,
그 녀석이 서 있던 자리와 그 녀석이 밟고 지나갔을 법한 자리들을 샅샅히 청소하고서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루가 지난 지금,
그 녀석을 떠롤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녀석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녀석,
나보다 훨씬 먼저 이 곳에 자리잡고 있던 녀석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녀석은 어젯밤 나와 마주하고는 이곳을 떠났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방의 주인인 내게 자신의 얼굴을 보이려 했을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아직도 그 방의 주인은 나라고 얘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끔찍했던 그 녀석은 그 방을 나섰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난 어제 본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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