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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고영화

은교_외로움과 욕망의 삼중주

by 짱고아빠 2012.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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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2012)

7
감독
정지우
출연
박해일, 김무열, 김고은, 정만식, 박철현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29 분 | 2012-04-25



나의 영원한 처녀_ 

은교를 알리기 위해 사용된 포스터의 홍보문구이다.

그날의 점심도 그랬다. 어떤 영화가 재미있는지 갑론을박하던 중에 '은교'얘기가 나왔고,

곧 그 영화는 좀 그런영화, 혼자보긴 좀 민망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식사 후 나는 은교한장 주세요를 외치며 커피한잔과 함께 은교를 찾았다.

미리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영화에는 님들이 걱정(혹은 기대)하는 70대 노인과, 여고생이 섹스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서지우의 목소리로 '세상은 그걸 사랑이라 부르지 않고 그건 더러운 스캔들'이라 부른다 이야기해준다.

친절도 하시지. 세상은 원래 그런거니까.


싱그럽다, 노인 이적요의 삶에 은교는 그렇게 다가왔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자신의 안락의자에 누워 잠들어 있던, 그저 이런 의자에 한번 앉아보고 싶었다던 아이,

영상미 그대로 싱그러움으로 노시인에게 찾아온 아이는,

혼자 산책을 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글을 쓰던 노시인의 삶에 하나의 의미가 된다.

그리고 노시인은 아이의 무릎에 누워 아이의 살갗이 닿을락 말락한 거리에서, 

이미 잊은 줄 알았던 자신의 젊은 날의 욕망과 마주하게 되고, 

차마 가질 수 없는 자신의 욕망을 글로 써내려간다.


청년 서지우, 스승의 재능이 죽도록 갖고 싶었던 제자는 언제나 이적요를 그림자처럼 좇는다.

존경, 사람들은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가 이적요를 그림자처럼 좇는 이유를 '존경'이라 말하지만, 그들에게도 말 못할 이유는 있는 법이다.

별이 다 똑같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울이 다 같은 거울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공대생.

그래서 은교가 자신보다 스승에게 다가가는 것이 누구보다 두려웠던 제자. 

스승의 껍데기로 성공을 이루었으나, 그게 너무 두려워서 스승의 서재에서 '은교'를 훔쳐야 했던 지우.

그 껍데기로 살아가는게, 그게 너무 외로워서, 그녀를 가로채야만 했던 지우.


소녀 은교. 엄마에게 맞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밤 할아버지를 찾아온 아이는 할아버지를 통해 뾰족한 연필이 시인에게는 슬픔이라는 걸 깨닫는다.

또한 엄마의 뒤꿈치를 깎던 칼이 슬프다는 것, 필통의 달닥달닥 소리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은교는 할아버지와의 시간이 좋기만 하다. 

사랑받는 존재, 할아버지의 겨드랑이 밑에서는 엄마도, 천둥번개도 무섭지 않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읽게 된 소설 '은교'에서 은교는 자신을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그려준 지우를 달리본다.

길고도 지루한 외로움의 상처로 두 사내 앞에 나타난 소녀.

그 상처가 외로움인 줄도 몰랐던 아이는 소설 은교를 통해, 그리고 필통과 연필깎기 칼을 통해 자신의 눈물과 마주하게 된다. 

달각달각, 소녀는 자신을 사랑스레 불러준 지우를 통해 이제 외로움과 맞서려 한다.


노인과 청년, 그리고 소녀.

너의 젊음이 너희가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 또한 나의 잘못으로 인한 벌이 아니다.


그래. 외로움과 욕망 사이에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만은,

결국 노시인은 다시는 은교를 마주하지 못한다.

세상은 원래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죽였다 생각한 제자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잘가라 은교야,

시인은 두 번 은교에게 이별을 고했다.


-


정지우 감독의 예의 영화가 그랬듯, 영화의 디테일은 소위 말해 대박이다.

배우의 몸을 따라 걷는 카메라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턱 막히게 한다.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극장에서 나홀로 '꿀떡'소리를 내는 것만큼 민밍한 일이 있을까)

또 주목해야 할 것은 배우 김고은의 발견이다.

박해일과 김무열의 연기도 뛰어났지만,

은교를 그대로 입고 나온 듯한 그녀는 이제 겨우 대학교 2학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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