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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고영화

돼지를 위한 변명

by 짱고아빠 2012.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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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스포있음)
철이의 처음은 영웅이었다.
그 아이는 공부와 힘으로 무장한 개들의 절대권력, 질서에 균열을 내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돼지들에게 철이는 영웅, 돼지의 왕이었다.

철이의 다음은 괴물이었다.
개들의 질서를 짓밟고 학교에서 퇴장한 철이는, 그들의 삶을 영원히 짓이길 괴물이 되고싶어했다.
돼지들에게 철이는 잊혀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언제든 돌아와 개들을 물리칠 메시아였다.

철이의 마지막은 사람이었다.
그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했으며, 더 이상 질서밖의 누군가가 아닌 조용한(질서에 순응한) 삶을 원했다.
돼지들에게 그러한 철이는 용납되지 않았다. 
철이는 돼지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살아남은 돼지들 역시, 종족을 넘어서지 못한 채 차가운 아스팔트위에 서 혹은 죽어있다.

영화는 철저한 이분법으로 구분된다.
개와 돼지,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그 구별이 너무도 선명해서 섬뜩하기까지 하지만,
영화는 찬찬히 그 이분법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돼지로 살아왔을 대다수에게(종석에게) 영민은 계속 질문한다.

폭력의 피해자이거나, 방관자이거나.
혹은 그 폭력의 동조자이거나.

너 그때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철이 니가 죽였지? 
그건 우리 모두를 위한거였잖아 그렇지?
그렇다고 변한게 뭐가 있어?

그랬다. 많은 이들이 죽어갔지만 결국 변한건 없다.
오늘도 누군가가 개들에 의해 처참히 찢겨져 죽어갈테지만,
여전히 우리는 먹고 마시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검은 하늘.

그 하늘이 나를 잠 못들게 한다.


돼지의 왕 (2011)

The King of Pigs 
8.4
감독
연상호
출연
양익준, 오정세, 김혜나, 박희본, 김꽃비
정보
애니메이션, 스릴러 | 한국 | 96 분 | 201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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